iMac G4 – 역사상 가장 섹시했던 컴퓨터

애플은 그 이름을 떠올렸을 때, 연상되는 제품이 가장 많은 제조사 중에 하나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다양한 라인업 대신에 세대(G : Generation)개념으로 하드웨어를 업데이트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품의 하드웨어 완성도는 높아지고, 모델 체인지 주기가 길기 때문에 소비자 기억에 오래 남는다. 또 하나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독특한 디자인을 많이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하면서 섹시했던 디자인을 가졌던 컴퓨터가 있었다. 애플이 2002년 선보였던 아이맥 G4다.

이전에도 아이맥이 있었다

아이맥? 그렇다. 최근 IT업계의 이슈 중 하나인 4K를 넘어 5K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그 아이맥과 같은 ‘라인’이다. 그런데 아이맥이란 제품군의 역사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일단 39년만 거슬러 가보자.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애플을 세운 시점은 1976년. 이로부터 4년뒤인 1980년에는 애플 컴퓨터를 100만 대를 팔았으며, 10년 뒤에는 직원 4천명에 시가총액 20억달러의 거대 기업이 되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는 1985년에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이후 넥스트(NeXT)를 만들고 픽사(Pixar)를 운영하다 1997년 화려하게 애플로 복귀한다. 복귀 후 첫번째 제품이 바로 조너선 아이브와 함께 만든 아이맥 G3다.

[애플 아이맥 G3]

스티브 잡스의 전기 영화인 에서 그는 애플에 잠시 놀러(?) 왔다가 조너선 아이브의 콘셉트 디자인(차후에 G3가 되는)을 보고 애플의 CEO 제의를 수락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이 디자인이라면 누구나 그 자리를 수락할 수 밖에 없겠다. 칙칙한 베이지색 컬러와 직사각형의 PC와 달리 투명한 청록색의 본체 디자인은 소비자를 열광 시켰고, PC 디자인의 역사를 바꾼 제품이란 평가도 이어졌다.그 결과 출시 1년 만에 200만대가 팔려 나갔다.

지금 기준으로도 대단한 수량이지만 1998년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였고 이를 계기로 적자에 허덕이던 애플은 다시 일어선다. 이 디자인은 투명한 젤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지며 이 청록색(본디 블루) 컬러 이후 다양한 컬러의 제품(중기에는 5가지에서 후기에는 13가지로 늘었다)이 출시되었으며, 전면의 ODD를 부셔 먹는 사람들이 많아져 후기 모델은 이 부분을 트레이 없이 CD를 밀어 넣는 슬롯로딩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출시된 아이맥 G4는 이 G3의 적통을 잇는 제품이다. 

우리는 호빵맥, 그럼 외국에선 뭐라 부를까? 

아이맥 G3은 눈으로 보이는 모양과 컬러도 예쁘지만 디자인에서 또 하나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다. 이 디테일은 그들이 만드는 PC 제품군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인데, 바로 본체의 디자인 콘셉트와 컬러를 키보드와 마우스의 디자인까지 가져가는 것이다. 2002년 1월 처음 선보인 아이맥 G4 역시 그렇다. 실제로 저 키보드와 마우스, 스피커가 아닌 다른 것을 함께 놓으면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이맥 G4는 동일한 디자인으로 모토로라가 만든 Power PC G4 700/800MHz 프로세서와 128/256MB 메모리, 엔비디아 지포스 2 MX(32 MB)에 40/60/80GB의 하드디스크, 24배속 CD-RW가 붙은 해상도 1024×768의 모델로 시작되었다. 마지막 모델은 USB 2.0 포트와 함께 Power PC G4 1.25GHz 프로세서와 256MB 메모리, 엔비디아 지포스 FX 5200 Ultra(64 MB), 80GB의 하드디스크, 24배속 CD-RW가 붙은 20인치(해상도 1680 x 1050) 모델로 단종되었다. 모니터의 사이즈는 15, 17, 20인치의 3종류다.

우리는 아이맥 G4의 하단 부분을 보고 호빵맥이라 부른다. 하지만 호빵이 없는 외국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그들은 해바라기(Sun Flower)란 애칭을 쓴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면서 조너선 아이브의 직책을 부사장에 필적하는 지위까지 올려 놓았지만, 그의 모든 디자인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G4를 만들면서 번번히 퇴짜를 놓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잡스는 아이브를 집으로 불렀으며, 그에게 해바라기를 예를 들며, ‘정원의 꽃들처럼 모든 요소들은 그 자체로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조너선 아이브는 순간적으로 영감을 얻어 하루만에 디자인을 완성해 버렸다. 이 디자인을 보고 나서야 잡스는 OK를 했다고 한다. 또한 잡스는 이 디자인이 꽤나 마음에 들었나 보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저작권을 걸어 놨다.

G4의 둥그런 ‘호빵’ 모양 본체 대신 피라미드형, 정육면체형 등 다양한 본체 형태들은 물론이고, 해바라기의 줄기(?) 부분도 다양하게 변형해 등록해 버렸다. 아이맥 G4 디자인을 똑같이 베끼는 것은 물론이고, 유사한 느낌을 연상시킬 수 있는 것까지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린 조치다. 워낙 특이한 디자인이었기에 소비자들이 아이맥 G4의 자매품처럼 느낄 수 있는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싶었을 것이다. 그 결과 아이맥 G4는 그 이전과 이후에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디자인을 가진 PC가 되었다.

감탄스러운 디테일, 빠름 그리고 정교함

애플이 매킨토시를 만들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들은 정말 디테일에 강하다. 아래쪽 호빵 부분의 모양이 둥그렇기는 하지만 굳이 안쪽에 들어가는 로직보드(그들은 PCB 기판을 이렇게 부른다) 까지 둥그렇게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지만 그들은 로직보드를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만큼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은 물론, 뒷쪽의 연결 포트의 배치와 납땜도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며, 이런 모양 때문에 제조 단가까지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바닥면에 반짝이는 알루미늄 마감을 했다. 모든 제조사가 신경쓰지 않던 부분이다.

사실 초기 매킨토시의 경우 이 제품을 만들던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설계자와 제작자들의 사인이 케이스 안쪽면에 들어있는 것을 보면 이런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겠다란 생각도 든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써서 꼼꼼하게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대량생산 시스템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성공의 비결이다. 소비자들은 의외로 이런 작고 미미한 부분에 감동하며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감동스러운 점은 또 있다. 본체와 모니터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넥(neck)으로 연결되어 있고, 손가락 하나로 모니터의 위치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동시에 특정 위치에 두면 정확히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 이 물건을 접하면 그 특유의 알싸한 느낌 때문에 몇 번씩 모니터를 움직이게 된다. 또한 움직임의 범위가 상당히 넓어 사용자가 어떤 위치에 있던, 본체를 움직이지 않고 사용자 쪽으로 모니터를 향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은 4 Bar-Linkage System과 함께 카운터 밸런스 스프링이다. 또한 디스플레이 주변의 넓은 베젤은 손가락을 대도 지문이 남지 않는다. 요즘 나오는 그런저런 제품들에는 이런 디테일이 없다.

사실 이런 움직임이 필요했던 것은, 출시 당시에는 최신 이었지만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TFT-LCD의 시야각 문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호빵맥 모니터들의 시야각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용자가 책상에 앉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기대거나 눕게 되면 모니터의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 애플은 이런 부분까지 면밀히 고려해 전대 미문의 움직임을 가진 모니터를 설계 했다. 게다가 당시 PC와 모니터 연결은 아날로그 방식인 VGA가 주류였는데, 이 방식은 데이터를 변환할 때마다 정보의 갱신이 필요하고 이 과정이 화질이 미세하게 떨어진다. 반면 호빵맥은 베이스와 디스플레이를 DVI로 연결했다. 그 결과 지금 봐도 나쁘지 않을 정도의 화질을 보여준다.

베이스 위쪽의 구멍은 내부의 열을 뽑아내기 위한 구멍이다. 차가운 공기는 밑바닥의 틈새로 유입되고 내부를 돌아서 열을 머금은 다음 위쪽으로 빠져 나간다. 그런데 내부의 온도에 따라 쿨링팬의 속도가 달라진다. 최대한 조용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속도로 돌아가고 있는 쿨링팬은 많다. 또한 2002년에 출시된 제품 치고는 꽤나 앞선 연결포트 들을 갖췄다. 비록 옵션이었지만 무선 인터넷(802.11b)을 연결할 수 있었고, 2003년 모델에는 USB 2.0 포트가 들어가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애플은 이때 부터 연결에 대해서는 최신 사양을 추구했었다. 오히려 12인치 맥북의 USB-C처럼 너무 빠른게 문제라면 문제다.

짧았지만 강렬한 아이콘

모두가 다 아는 애플의 아이콘과 상징으로 자리잡은 아이맥 G4지만 실제로 이 제품이 생산된 시기는 2년 6개월 밖에 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2002년 1월 출시되어 2004년 7월 단종된다. 짧지만 불꽃처럼 살아서 더 아쉬움이 큰 젊은 시절 요절한 배우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이 아이맥 G4의 희소성과 소장욕구 때문에 중고가는 꽤나 높다. 또한 여전히 멀티미디어 재생 기기로 즐겨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개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이맥 G4는 단순함을 통해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킨 좋은 디자인 사례로 남아있고 소개되고 있는데, 조너선 아이브는 자신의 책에서 이 디자인은 양쪽의 스피커와 본체의 긴 막대, 돔형의 본체를 통해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기 위한 의도였다고 밝혔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맥 G4를 더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출처 : 더기어 [레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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