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Book의 탄생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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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of the PowerBook: How Apple Took Over the Portable Market in 1991
Tom Hormby – 2005.11.23

파워북은 포터블 컴퓨터 시장에서 제일 존경받는 컴퓨터이자, 제일 갖고 싶은 컴퓨터였다. 물론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매킨토시를 포터블로 만들자는 애플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92년 들어서 애플은 파워북을 히트시켰고, 파워북 라인만으로 71억 달러의 판매액을 올린다. 이는 정말 최고의 판매액이었다. 매킨토시처럼 파워북도 애플의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제품이었다.

The PowerBook Project

1990년 가을, 애플 CEO 존 스컬리는 성공적인 포터블 컴퓨터를 내놓기 위해 어느정도 독립된 부서를 마련한다. 후에 그는 소니와 계약을 맺어서 미끈한 포터블을 만들려고 하였다. 코드명은 아사히(Asahi)였다.

제품 관리자는 존 메디카(John Medica)와 랜디 바탓(Randy Battat), 닐 셀빈(Neil Selvin)이었고, 이들 모두 애플 기업구조의 비효율성을 최초로 목격하게 된다. 랜디바탓은 리사 제품 관리자 일을 했었고, 컴퓨팅의 미래가 만 달러를 낼 만한 몇 안되는 이들을 위한 기기로 전락하는 광경을 지켜봤었다. 바탓은 파워북부를 이끌었고, 파워북이 포터블로서 효율성있게 돌아가도록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도 감독하였다. 존 메디카와 닐 셀빈은 하드웨어 디자인과 마케팅을 각각 맡았으며 바탓의 지휘 아래에 있었다.

1991년의 포터블 시장은 현재와 매우 달랐다. 도시바와 컴팩이 앞서가는 주자였다. 그런데 도시바와 컴팩의 포터블은 8 파운드를 족히 넘어갔으며, 하드드라이브와 마우스와 같은 제일 저렴한 데스크톱 시스템 기능도 없었다.

PowerBooks

세 명은 새로이 파워북 프로젝트를 발족시킨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의 포터블 시장 판도를 뒤바꾸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파워북은 8 lb. 이하이어야 하고 모두가 고가의 데스크톱 시스템과 같은 기능을 탑재해야 했다.

존 메디카 팀은 하드웨어 디자인에 들어갔다. 파워북은 두 가지 형태로 나올 것이었다. Tim LC와 Tim이다. Tim은 Tim LC와 동일하되 더 빠른 프로세서와 더 고가의 액티브매트릭스 화면을 탑재할 계획이었다. (액티브매트릭스 화면을 사용한 첫 번째 랩톱은 1989년의 애플 맥포터블이었다.) 두 랩톱 모두 소니가 디자인했던 아사히의 케이스와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Tim 하드웨어는 상당히 달랐다. 매킨토시 포터블과 아사히 둘 다 16 MHz 68000 프로세서를 사용한 반면, Tim 디자인은 68030 프로세서를 사용하였다. 68030은 더 많은 RAM과 속도, 파워, 그리고 가상 메모리 기능을 갖추었다.

Novel Design

파워북과 PC 포터블 간에 제일 다른점은 내장 트랙볼이었다. 당시 트랙볼이나 여타 포인팅 디바이스를 내장시킨 곳은 없었다. 게다가 트랙볼을 내장시킨 랩톱이 나와도, 이상한 곳에다가 트랙볼을 위치시키고는 하였다. 컴팩의 트레이드마크 디자인은 트랙볼을 화면 뒤면에 위치시키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용자는 화면을 잡고서 포인터를 움직여야 했다. 매킨토시 포터블처럼 트랙볼을 한쪽 구석에 넣거나, 키보드 옆에 따로 부착시키는 곳도 있었다.

Tim과 Asahi는 둘 다 트랙볼을 키보드 전면 중앙부, 거대한 손목받침대 한가운데에 놓았다. 사용하기에 더 쉬울 뿐 아니라, 더 편안하기도 하였다.

믿을 수 없게도, 메디카의 엔지니어들은 모든 부품을 PC 경쟁제품보다 훨씬 더 작은 본체 안에 다 넣을 수 있었다. 두 모델 모두 2.5″ 두께(컴팩에서 제일 작은 기종이 2.75″였다)에 레터-크기의 종이보다 약간 더 큰 크기의 본체를 갖고 있었다. 더해서 두 기종 모두 6.8 lb.의 무게였다. 정말 포터블했으며, 매킨토시 포터블의 15 lb.에 비하면 정말 양반이었다.

Software

매킨토시 포터블 소프트웨어 대부분은 Tim으로 옮겨졌다. 랜디 바탓이 바꾼 부분은 주로 소프트웨어 내부였다. Tim 소프트웨어에서 가장 새로운 기능은 컴퓨터의 배터리가 부족할 때, 배터리 수명을 늘리기 위해 프로세서 속도를 늦추는 기능이었다. 68030 프로세서의 더 놓은 RAM 사양덕분에 개발자들은 재시동해도 기록물이 남는 RAM 디스크를 만들어서 사용자가 하드드라이브를 꺼 두어도 프로그램과 운영체제를 RAM만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파워북이 제일 큰 강점이 파워북팀의 강점은 아니었다. 그것은 1985년 매킨토시 오피스의 일부로 나온 애플톡(AppleTalk)이었다. 애플톡은 사용자가 쉽게 네트웍을 구성해서 파일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애플 어딘가에서 엔지니어 팀 한 곳이 모뎀과 전화선 상에서 돌아가는 애플톡을 만들고 있었다. (애플톡 Remote Access) 그러면 수천 마일 바깥의 애플톡 네트워크로 로그해서 들어갈 수도 있었다. 닐 셀빈은 파워북의 출하때까지 해당 애플톡 버전의 출하를 연기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출하 예정일은 1991년 11월 컴덱스 컴퓨터쇼였다.

Cheap Launch

존 스컬리는 포터블 컴퓨터에 대해 대단히 까다로왔다. 그는 매킨토시 포터블과 같은 실패작에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셀빈에게 백만 달러만을 허용했었다. 수천 만 달러가 투입되는 프로젝트가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정말 짠 액수였다.
그래서 셀빈은 파워북 마케팅을 위한 캠페인을 새로 벌이는 대신, 돈을 한 데에 몰아서 파워북을 홍보하는 작전을 선택했다. 그래서 오리지날 매킨토시 광고 1984를 만들었던 회사, Chiat/Day가 농구 수퍼스타, 카림 압둘-자바(Kareem Abdul-Jabar)가 출현하는 광고를 찍었다. 압둘-자바가 비행기 좌석에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파워북을 꺼내어 손쉽게 타이핑을 치는 장면이 흐른다. 그리고 화면에는 이런 문구가 뜬다. “At least his hands are comfortable.”

파워북은 대성공이었다. 애플은 Asahi와 Tim LC, Tim을 모두 시장에 선보여서 히트를 이루었다. 이들의 가격은 2300 달러에서 4300 달러 선이었다. 비록 Asahi(파워북 100으로 나왔다)는 다소 진통을 겪은 후 천 달러 이하로 떨어져서 성공을 거뒀지만 말이다.

애플이 디자인한 두 종류의 파워북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판매고를 올렸다. 하이엔드 Tim인 파워북 170은 베스트셀러였으며, 애플이 수요에 부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Tim LC는 파워북 140이었다.) 경영진은 Tim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하고 Asahi의 수요도 과도하게 예측했었다. 따라서 부족현상이 생겼고, 소비자들은 파워북을 사기 위해 6 개월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출시된 첫 해에, 파워북은 10억 달러의 매출액을 올렸고, 포터블 시장에서 도시바와 컴팩으로부터 1위를 뺏어왔다. 애플 최악의 나날이었던 1994년 동안에도 파워북 분야만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1995년의 결함있는 파워북 5300이 나오자, 애플은 1위를 다시 빼앗기게 된다. 

위민복님이 변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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