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워즈 3 :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독점을 차지하였나

Apple delivered a full Office suite in 1983, then handed the application market to Microsoft. Office 1.0 didn’t appear until seven years later.

Monday, September 10, 2007

Office Wars 3 – How Microsoft Got Its Office Monopoly

Daniel Eran Dilger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독점 덕택에 더 많은 수입과 윈도 소프트웨어만큼의 이윤도 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으로 어떻게 그런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오피스의 역사를 보면, 그 역사는 80년대 리사와 매킨토시에서 애플이 만들어 놓은 뿌리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현재 애플의 아이폰 전략과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오피스워즈 1 : 클라리스와 애플 아이웍스의 기원
오피스워즈 2 : 마이크로소프트의 막대한 오피스 이윤
오피스워즈 3 :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독점을 차지하였나
오피스워즈 4 : 마이크로소프트 대 IBM과 로터스

The Origins of Office.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에 있어서 독보적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최초로 진입한 기업은 아니었다. 80년대 초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는 Xenix라는 이름 하에, AT&T 유닉스 복제본 라이센스를 얻으려 노력중이던 랭귀지 판매 회사였다.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팀을 이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당시, CP/M을 베낀 DOS를 IBM의 새 PC에 라이센스 내주었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시작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 새로 만들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제안하였다.

프로토타입의 맥 하드웨어와 애플 개발툴 내부 접근권을 얻게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 1981년에 협약을 맺는다. 애플이 맥을 소개한지 일 년 이내에는 마우스-기반의 제품을 내놓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신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완전히 새로운 맥 플랫폼을 사용하여 데스크톱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뛰어들게 해 줄 흔치 않은 기회를 약속하였다.

OS 역사 속에서 SCO와 리눅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
80년대 OS의 역사

Software Sells Systems!
맥이 나오기 이전, 애플은 첫 그래픽 데스크톱 컴퓨터로서 리사(LISA)를 선보였었다. 리사용 그래픽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이전과 매우 달랐으며, 그 때문에 특별한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애플 자신이 나서서 리사에서 쓸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을 작성한다. 애플은 리사 플랫폼을 개방하여, 써드파티 개발이 이뤄지기를 계획했었지만, 일단은 리사가 지닌 인터페이스의 강력함을 보여줄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봐야 했다.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라는 기사에 대해, 독자, Jim Hoyt가 필자에게 메일을 보내 왔었다. 동 기사는 애플이 지난 10년간 부활을 보인 이유 중 하나가, 애플 자신이 내부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뛰어들어서라 말했었다. 그런데 그는 리사 개발팀의 초점도 마찬가지였다 말해 주었다. 그의 말이다.

“1979년 당시, 곧 리사 프로젝트를 맡게 될 예정이던 존 카우치(John Couch)가 애플 컴퓨터에서 만드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맡고 있었어요. 그가 이런 포스터를 만들었죠. ‘Software Sells Systems.'”
필자가 그 포스터를 찾아냈다. 워낙에 역사적인 포스터인지라 길게 붙였다. 독자 Jim에게 감사드린다!

[애플은 어째서 되살아났을까]

Apple Delivers Lisa Suite Seven Years Ahead of Microsoft Office.

포스터의 주안점은 명확했다. 리사가 저절로 팔릴 물건은 아니었다. 팔릴려면 그래픽 데스크톱의 미래를 일굴 실용적인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이 절실했다.

그래서 애플은 1983년, 리사 시스템과 함께, 일곱 가지의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패키지 전체를 개발해 놓았다.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와 드로잉, 그래픽, 프로젝트관리, 터미널 에뮬레이션 프로그램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초의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애플리케이션을 패키지 오피스 1.0으로 내놓은 해가 1990년이었다. 그것보다 7년 전의 얘기다.

Byte 매거진에서 1983년 2월호에 내보낸 리사 리뷰를 보자. 그레그 윌리암스(Gregg Williams)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말씀하시다시피, 필자는 리사에게 매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케팅이나 비용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낸 애플을 칭찬할 수밖에 없겠다. 강력한 의지 없이는 리사를 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애플 외에 이 정도의 프로젝트를 추진할 만한, 애플 방식으로 흥미를 가질 만한 다른 회사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리사 프로젝트는 5천만 달러 이상의 거대한 프로젝트였으며, 200명 이상을 투입시켰다고 한다!) 실용도로 보아도, 리사는 상징적인 컴퓨터가 아니라, 오히려 마이크로컴퓨터와 대형-컴퓨터 시장 양자를 노릴 수 있다. 리사는 지난 5년간 나온 컴퓨터 중 제일 중요한 컴퓨터이다. 1981년 8월에 나온 IBM의 Personal Computer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년 뒤, 훨씬 저렴한 매킨토시가 오히려 리사를 대체한다. 매킨토시는 리사의 많은 기능을 1/4 가격으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맥에는 리사의 값비싼 메가바이트급 RAM과 하드드라이브, 혹은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패키지가 없었다. 맥은 워드프로세서와 패인팅 툴만을 포함한 채로 나왔다.

그렇다면 애플은 리사용 애플리케이션을 어째서 매킨토시용으로 포팅하지 않았을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주된 이유가 있다. 외부 개발자들을 소외시킬 우려가 있어서이다. IBM은 1981년 PC를 선보인 이후, 데스크톱 컴퓨터세계를 재빠르게 장악해들어가고 있었다.

“The Lisa Computer System” Reprinted from Byte, issue 2/1983
The Lisa, Apple’s First GUI-Based Computer System – VAW
윈도 로고는 남았는데 애플 로고는 왜 사라졌을까

Apple’s Lisa vs the Third Party Mac Platform: 1980 – 1984.

게다가 애플 내부적으로 리사 그룹과 매킨토시 팀 간의 알력다툼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맥용 소프트웨어 전략은 다르게 나아갔다. 소수자였던 맥 그룹은 완전한 사무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자금이 모자랐다. 그래서 맥 그룹은 써드파티에게 그 개발을 맡긴다. 애플 II 방식이 그러했다.

애플 II 판매량은 1979년에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댄 브리클린(Dan Bricklin)의 VisiCalc 스프레드쉬트 소프트웨어덕붙이었다. 이 성공때문에 IBM이 마이크로컴퓨터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애플은 1984년이나 되어샤 AppleWorks 판매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AppleWorks는 워드프로세서와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 패키지를 갖춘 애플 II용 소프트웨어였다. 이 소프트웨어는 제한적이나마 90년대 초까지 업데이트를 하게 된다.

당시 애플 경영진은 리사에서처럼 맥에서도 완전한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개발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애플 II에서 성공하는 광경을 보고서도 말이다. 오히려 애플 경영진은 써드파티 개발사와의 협력에 더 관심을 기울여서, 스스로 맥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이윤을 낼 생각을 안하게 된다.

IBM PC를 둘러싸고 성장한 써드파티 소프트웨어 산업을 그대로 재현시킬까 두려워했던 애플은 의도적으로 내부 소프트웨어 개발을 고집하였고, 나중에 이 개발부를 클라리스라는 시베리아로 추방시켜버린다. 너무나 값비싼 실수였다. 이 조치 이후로 거의 10년간 애플은 파괴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애플이 크게 어려울 당시, 애플이 무료로 내놓은 제일 중요한 제품들 세 가지를 보면, 쇠퇴가 시작됐음을 알 만하다.

  • 1984년 당시 애플 II용으로 이윤을 낸 AppleWorks
  • 1987년 무료였던 맥용 HyperCard
  • 1991년 무료였던 맥용 QuickTime

애플과 웹브라우저
1990-1995: 당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현재의 애플
최종병기 퀵타임

A Fearsome Future VisiOn for the PC: 1981 – 1983.
매킨토시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써드파티를 추구한 이유는 또 있었다. VisiCorp에서 만든 마우스-위주의 VisiOn 그래픽 데스크톱 환경이 무서워서다.

VisiOn은 원래 1981년 11월에 나온 애플 III용 환경으로 보였다. 그러나 IBM PC가 나온 바람에 애플 III는 완전한 실패작이 되어버리고, VisiCorp도 1982년, PC용으로 이주하겠노라 발표했었다. 그러면서 제품은 1983년 중순에 선보이겠다고 약속하였다. 당시 애플은 리사와 맥 작업을 계속 벌이는 중이었고, 둘 다 서로간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데 번잡하고 느린 VisiOn은 마우스가 같이 들어간 값이 790달러에 달했다. 애플리케이션 비용만 250달러와 400달러짜리가 나왔고, 2000달러 짜리 PC에 5000달러 짜리 하드드라이브 업그레이드가 필요했다. 이런 VisiOn을 지원한 회사가, VisiCalc를 만들어서 애플 II를 크게 도운 VisiCorp였다.

VisiOn은 또한 IBM의 비싸지만 퍼포먼스가 느리고 혁신도 없는 PC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IBM은 그 명성과 함께, 기업 환경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손쉽게 애플의 기업시장 진입을 막아냈다.

애플 III로 첫 대실패를 겪고, 1983년, 9995달러 짜리 리사로도 별 성공을 못이루자, 애플은 이제 IBM PC가 못생긴 맥 가면을 쓰는 현상에 매우 우려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가면은 7500달러 짜리 VisiOn에 비싸고 안좋은 IBM PC였지만 말이다.

그런 그래픽 시스템과 경쟁할 유일한 방법은 매킨토시를 될 수 있는 한 재빠르게 저가형으로 내놓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써드 파티 회사들의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도 필요했다. 애플에게는 다행스럽게도, VisiOn은 수 개월간 출시연기되었고, 1983년 말까지 나오지 못하였다.

완전히 실패하기 직전까지, 언론은 VisiOn이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의 주된 경쟁자라 크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1983년, VisiCorp는 하강중이었다. 스타급 개발 관리자인 미치 케이퍼(Mitch Kapor)가 회사를 떠나 Lotus Development를 창립했기 때문이다. 그의 스프레드쉬트 제품인 DOS PC용 로터스 1-2-3는 VisiCorp와 VisiOn을 파괴시켰다.

VisiCorp Visi On – Toasty Tech
1980-1985: 8-비트 플랫폼의 시대

Frying Pan to the Fire: Apple Runs to the Arms of Microsoft: 1981.
그러나 애플 III가 실패하고 PC가 크게 성공한 바람에, 새 플랫폼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줄 회사 찾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리사를 출시할 때, “다른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는” 리사로 나왔기에, 개발자 관계마저 악화된 상태였다.

그래서 맥을 출시할 때는 PC 방식을 따르기로 하였다. 회사의 힘을 써드파티 발굴과 애플 소프트웨어의 축소로 움직인 것이다. 애플은 최소한만 손대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PC 개발사들은 매킨토시 지원에 대해 일단 두고보자였다.

애플 II의 성공을 VisiCalc가 크게 도왔던 방식과 마찬가지로, 매킨토시도 성공을 시키려면 사무용으로 뭔가 성공을 거둬야 하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끌어들인다. 새로운 차트용 애플리케이션과 VisiCalc 스프레드쉬트의 복제품인 Multiplan의 맥용 인터페이스 제작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맡긴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한 비밀리에 또 다른 맥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MultiTool Word라 불렀다. 원래는 제록스 PARC의 시모니(Charles Simonyi)와 브로디(Richard Brodie)가 개발한 Bravo 워드프로세서가 그 기반이었다. 198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둘을 모두 고용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당시는 맥 팀이 이미 맥용 워드프로세서, MacWrite를 개발하기 시작한 때였다.

A Rich Neighbor Named Xerox – Folklore.org
An Office User Interface Blog – Microsoft’s Jensen Harris

Apple’s Problematic Partnership with Microsoft: 1981 – 1985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은 정말 안 좋은 아이디어였다. 그것을 깨달은 회사가 처음이 IBM이오, 두 번째가 애플이었다. 1983년 내내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릴지 애플과 계속 협의하였다. 데스크톱 애플리케이션 개발과는 별 관계가 없는 문제도 포함시켰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83년 11월 Comdex 쇼에서, PC용 맥환경 클론인 윈도를 사전-발표했기 때문이다. 마우스를 이용한 DOS용 텍스트기반 워드도 이때 발표되었다.

일찌기 PC용 VisiOn을 우려하던 애플이었다. 이제는 협력사가 애플 내부의 그래픽 데스크톱 작업을 같이 해서 IBM 플랫폼에 또 다른 경쟁제품을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원래 애플과의 계약서는 맥이 1982년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고, 1년만 기다리면 됐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로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이 계약서는 1984년이 되도록 업데이트를 못시킨 상태였다.

DOS용 워드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DOS PC 사용자들이 단일 애플리케이션에서 마우스를 별로 쓰고싶어하지 않아서였다. 윈도 1.0도 약속했던 1984년 초에 나오지 못하였다. 실제로는 1985년까지도 못나오고, 나왔을 때도 완전히 농담 대상이었으며,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를 믿었다는 애플의 죄때문에, 문제가 생겨버리고말았다. 윈도 1.0이야 보잘 것 없었지만, 윈도는 DOS용 워드의 원시시대격 인터페이스를 실제로 진보시켰었다. 애플로서야 걱정할 이유가 충분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과 1985년 직접 협력하여 OS/2라 불리우는 DOS 대체품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1996년의 협정, 그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Apple Grows Dependent upon Third Party Software: 1985 – 1990.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관계는 계속 악화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85년, 맥용 스프레드쉬트를 마침내 선보였지만, PC용도 내놓겠노라 협박하였다. 이 때문에 애플 CEO, 존 스컬리는 여러 가지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리를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허용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그 대신 얻은 것은 2년간 맥 전용 Multiplan의 개발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맥용 Multiplan과 Chart 애플리케이션은 1984년, 애플 광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클릭하면 더 커진다.)

애플 맥 광고를 보면, 로터스의 미치 케이퍼 옆에 젊고 어린 빌 게이츠가 나란히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표준을 세우는 일, 약간 다른 정도가 아닙니다. 상상력을 잡아내는 일입니다. 매킨토시가 바로 그 표준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만약 현재 윈도모바일을 안판다면, 게이츠는 아이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발언을 했을 것이다!

스컬리는 오만하게도, 1985년, 애플이 재빠르게 맥 기술을 Northern Telecom과 Motorola, AT&T에게 라이센스해야 한다는 빌 게이츠의 제안을 거절해왔다. 그 대신, 애플은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독특한 맥 데스크톱을 유지하려 했다.

이와 동시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점차 의존적으로 되어갔다. 맥용 애플리케이션의 업데이트를 위해서였다. 애플 자신이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를 내부적으로 만들면, 써드파티 개발자들을 위협하리라 우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4년 애플은 애플 II용 AppleWorks를 출하한 바 있고, 이 프로그램은 애플이 일부러 마케팅을 거의 안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컴퓨터 플랫폼으로 봐서도 제일 잘 팔리는 소프트웨어였다. 텍스트기반의 8비트 프로그램이 아닌, 그래픽 기반으로서 새로 매킨토시를 내세우려는 애플로서는 떨떠름한 일이었다.

1987년, 애플은 AppleWorks와 MacWrite, MacDraw, MacPaint를 포함하여, 애플리케이션 개발부를 클라리스라는 자회사로 분리시킨다. 클라리스는 그 후, 사무용 맥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윤을 올리지만, 애플로부터 갈라져 나온 회사로서 운영이 이루어졌다.

1990년, 스컬리는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도 대단히 수지맞은 장사라는 점을 파악하였다. 애플은 두 개의 견고한 플랫폼을 갖고 있었다. 애플 II와 맥이다. 애플은 둘 다 소프트웨어 마케팅을 별다르게 하지 않았는데, 이는 분명한 대실수였다. 스컬리는 클라리스를 독립한 회사로 놓아두기보다는 다시 애플로 편입시키기로 결정내린다. 그러나 그 결정이 늦어졌고, 클라리스의 직원들과 경영진들이 주가 상승을 기대하던 중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환멸 속에 클라리스를 떠났다.

[오피스워즈 (Office Wars)]

Microsoft Becomes an Applications Company: 1985 – 1989.
이와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맥용 그래픽 Multiplan은 Chart와 합쳐져서 1985년, 엑셀로 이름이 바뀌고, 큰 히트작이 된다. 이에 반해, 이름을 엑셀로 바꾸지 않은 채, Multiplan으로 남은 DOS용 버전은 PC에서 로터스 1-2-3에게 전혀 경쟁상대가 못되었다.

2년 후인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와 스컬리 간의 계약이 만료된다. 이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PC용으로 겹치는 창 등, 맥 데스크톱을 좀더 복제한 윈도 2.0과 엑셀 2.0을 출시한다. 그런데 윈도 2.0 OEM은 당시 없었고, 엑셀을 구매한 경우, 윈도가 번들로 딸려나왔다. MIDI 스타일의 공포스런 인터페이스에 색깔 감각도 형편 없었지만, 그래도 맥 환경의 맛보기는 볼 수 있었다.

Apple Sues to Stop Graphical Copycats, But Only On the PC: 1985 – 1988.
사실 그 당시, VisiOn 식으로 그래픽 환경을 제공하려는 회사는 많았다. 그리고 애플은 이들을 모두 위협하였다.

가령, Berkeley Systems의 윈도윙 GEOS 환경이 있다. Commodore 64용으로 나왔다가 나중에 애플 II 시스템용으로도 나온 GEOS를 애플은 무시하였다.

그러나 CP/M 메이커인 Digital Research가 DOS PC용으로 GEM/1을 선보이자, 애플은 Digital Research를 제소하여 승리하였고, 이 때문에 특정 기능을 몇 가지 없애야 했다. 그 중 제일 분명하게 없애야 할 기능은, 세련된 윈도 겹치기였다.

이와 동시에 GEM/1은 1985년의 Atari ST용으로도 팔렸지만, 애플은 이 제품을 완전히 무시한다. 덕분에 아타리는 CEO, 잭 트라멜(Jack Trammel)의 이름을 따, 재킨토시라 불리우며 맥과 유사한 시스템을 제공할 수 있었다.

애플은 또한 1985년에 나온 Commodore Amiga의 겹쳐지는 창을 무시하였고, 1987년 Acorn에서 개발한 RISC OS의 유사 그래픽 데스크톱도 무시하였다. 분명 영국회사인 Acorn의 RISC OS의 존재를 애플은 알고 있었지만, 두 회사는 RISC 기반 프로세서를 공공으로 개발하기 위해 ARM을 세우는 등, 협력 관계에 있었다. 여기서 나온 프로세서가 Acorn의 RISC PC와 뉴튼에 들어가고, 현재 아이포드와 대부분의 휴대용 기기에 들어가고 있다.

[iPhone은 어째서 Symbian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1987년에 나온 마이크로소프트 2.0에 대해서만은 적대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 PC용으로 맥 애플리케이션을 포팅시키기 위해 이 제품을 활용한다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매킨토시만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행위였다.

더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가 IBM OS/2용 새 인터페이스의 기반이라 묘사하고 있었다. 애플리케이션 사업을 끌어올려줄 정도로 믿던 사업자가 갑자기 똑같은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경쟁자로 나서는 상황이었다. 애플이 격노한 것도 사실이었다.

윈도 2.0도 판매량은 보잘 것 없었지만, 스컬리는 마이크로소프트를 1988년 고소한다. 1985년 합의와 달리 애플로부터 맥 소프트웨어를 사용했다는 명목이었다. 애플은 또한 윈도 2.0에 대해 HP도 고소하였다. HP는 윈도 2.0용 애드온 패키지인 NewWave를 출시했었다. PC에 맥과 유사한 기능을 넣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동안 PC용 엑셀 판매량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용 엑셀을 대체하고 결국 파괴시킨다. 맥 애플리케이션을 PC용으로 포팅시키는 툴로 윈도를 활용하면서 말이다.

[특허와 애플]

Apple Loses Jobs, Opportunities: 1986 – 1988.
당시 애플은 맥용 애플리케이션을 IBM PC용으로 이주시키고 있다는 공포감에 빠져 있었다. 1986년 당시 스티브 잡스의 계획은 매킨토시를 기업용과 서버용으로 재빠르게 이주시킨다였다. 하지만 보다 보수적인 스컬리는 그 아이디어를 물리치고, 애플 이사진들도 매킨토시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회사를 위협시킨다고 생각하였다.

[애플 서버 20년사]

잡스는 좌절감에 애플을 떠나 넥스트를 창립하여, 기업위주의 웍스테이션을 만든다. 스컬리는 잡스를 쟝-루이 가세로 교체한다. 가세는 뉴튼과 같은 비실용적인 기술 비전을 스컬리와 함께 공유하였으며, 맥을 하이엔드 시장에 팔려 노력하였다.

애플은 점차 늘어나는 맥 판매량과 판매가 유지되는 애플II 덕분에 엄청난 이윤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사업을 무시하고 피하는 대실수를 저지른다. 심각한 일은 더 있었다. 맥용 주요 소프트웨어를 유지하기 위해 경쟁사에게 의존한 것이다.

애플은 잡스를 떠나보내면서, 유능한 엔지니어들도 넥스트에게 빼앗긴다. 1988년 일이었다. 넥스트가 내놓은 첫 번째 제품을 보면, 그것은 애플 자신이 했어야 할 차세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였다.

뉴튼의 교훈
iPhone용 OS X과 WinCE, Palm, Symbian, 리눅스

Sculley’s Apple Bungles Office Applications.
스컬리의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법정에서 다투었다. 시장에 실제로 경쟁을 위해 한 일은 별로 없었다. 플랫폼으로서의 맥이나, 애플리케이션 영역이나 애플이 한 일은 없었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모두를 차지하게 된다. 1990년의 일이다.

오피스를 출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워드와 엑셀, 파워포인트(1987년, 한 맥용 프리젠테이션 애플리케이션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하여 만들어졌다)를 단순히 합치기만 하였다. 애플이 리사 애플리케이션을 맥용으로 포팅만 시켰어도 애플만의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를 다시 꾸리기 위해 수 년을 허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플이 스스로 그 기회를 1985년, 차버렸다.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 윈도 95라는 충분한 맥 복제품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용 오피스 개발을 중단시키고, 1998년까지 오피스를 선보이지 않았다.

[오피스워즈 (Office Wars)]

Apple’s Squandered Opportunity in Software Sales.
이상한 일이다. 애플은 AppleWorks 판매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것도 1984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그러했다. 게다가 맥용 클라리스웍스 또한 1991년 데뷔했을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웍스 판매량을 상당수 빼앗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을 판다는 사실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1979년, 카우치가 발견한 사실을 말이다.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애플 안에 있었는데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을 잡는 게으름을 부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별 혁신도 없는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맥 소프트웨어 수입으로만 수 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스컬리의 애플은 법률이 가까운 장래에 이런 불균형을 해결해 주리라 희망하였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싸움 없이 전체 사업모델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허용해버렸다. 그러나 법원도 재판을 1994년까지 끌면서(기술업계에서는 영원함과 맞먹는 기간이다) 애플의 바람과는 달리 스컬리의 “룩앤필” 재판을 인정하지 않았다. 스컬리가 일찌기(1985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제한적이나마 맥 아이디어의 권리를 줬다는 이유였다. 맥 개발사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유지시키기 위한 스컬리의 승부수가 스컬리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아이러니컬한 점도 있다. 1985년부터 1995년 사이를 보면,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아쉬운 점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에게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심지어 1997년, 스티브 잡스조차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5년동안 맥용 오피스를 만들라 시킬 수 있었다. 그것도 맥 데스크톱에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올려주는 댓가로 말이다. 퀵타임을 죽이라는 요구는 잡스가 거절했었고, 빌 게이츠는 직접 대중 앞에 나와서 애플에게 1억 5천만 달러의 투자를 했노라 밝히기까지 하였다.

스컬리의 단견과 보수성은 애플을 파괴시키고, 애플이 1983년 리사 애플리케이션 패키지를 만들었는데도 이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겨버려서 막대한 부를 날려버렸다. 이로써 애플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96년의 협정, 그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
애플, NeXT 서버로 무장하다

Microsoft Betrays IBM and Uses Office Against OS/2.
마이크로소프트가 배신한 회사가 비단 애플만은 아니다. 제일 분명한 첫 사례가 IBM이다. IBM은 DOS를 공급하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OS/2 개발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을 배신한다. 처음에는 운영체제 파트너쉽에서 발을 빼면서, 그 다음에는 1992년 OS/2용 오피스를 내놓은 후, OS/2용 오피스 개발을 취소시키는 식이다.

IBM은 나중에 로터스를 인수하여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을 벌이려 하였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이 생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마이크로소프트 독점 재판에서 공개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IBM을 벌준다. 그 이야기는 오피스워즈 4에서 밝히겠다.

Using the Office Monopoly Against NeXT.
잡스는 스컬리 치하의 애플을 빠져나와 넥스트를 만들면서 중대한 교훈을 얻었다. 넥스트를 세운 목적은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구축이었다. 그러나 넥스트라는 진보적인 운영체제를 받쳐줄 만한 하드웨어를 만드는 업체가 없어서, 넥스트는 애플 사업모델을 따라 하드웨어 판매부터 시작하였다.

애플에 있을 때에도 맥용 소프트웨어 사업자를 찾기가 어려웠었다. 넥스트는 한 층 더 어려웠다. 애플의 위협때문에 넥스트는 저가시장에서 애플과 경쟁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초고가 시장에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NeXTSTEP은 진보적인 빠른 개발 프레임웍을 개척하여, 써드파티가 소프트웨어 작성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로터스가 OS/2용으로 새로운 스프레드쉬트 패러다임을 작업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잡스는 로터스 팀에게 넥스트 시스템을 제공한다. 넥스트용으로 로터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반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이 선사해준 사무용 애플리케이션 독점을 활용하여, 넥스트의 채택을 방해하였다. 넥스트스텝용 소프트웨어를 작성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Develop for it? I’ll piss on it.”

게이츠는 카이로라 불리우는 객체지향 개발 프레임웍 운영체제를 즉각 제공하겠노라 발표한다. 허풍이었다. 1991년부터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한 1997년까지 지속된 허풍이었다.

[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Microsoft’s Murderous Partnerships.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의 허풍때문에 넥스트도, OS/2도 생존이 가능할 정도의 저변을 넓힐 수 없었다. 애플만이 맥이라는 틈새시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써드파티 개발자들이 발목을 잡았다. 애플 자신이 나서면 써드파티가 안나서리라는 두려움은 90년대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도 그러했다. 윈도로 플랫폼을 개발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로 보이는 써드파티를 차례로 파괴시킨다. 윈도와 오피스를 한데 모아서, WordPerfect와 로터스 1-2-3, Ashton-Tate와 Borland를 모두 다 파괴시킨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도전할 만한 거대 개발사라면 모두 당하였다.

경쟁 DOS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들을 모두 다 죽인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방침때문에 노벨과 IBM, 썬과 넷스케이프도 당하였다. 하지만 윈도 열광론자들은, 널리 알려진 이런 사실들을 애써 감추려 한다. 그러면서 애플보고 “협력할줄 모르는 회사”라 일컫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마 이들에게 급료를 주는 모양이다.

애플과 써드파티 개발사 간의 경쟁을 보자. 셰어웨어 프로그램일지라 하더라도, ZDNet 블로그와 IDG의 InfoWorld/PCWorld/Computerworld 기사들은 비양심적이라 비난하기 일쑤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 하여, 거의 모든 “파트너”들을 몰살시킨 마이크로소프트의 행위를 그들도 알고 있다. 보고서도 모르는 바보들일까, 아니면 돈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위인들일까?

여담인데, 오피스워즈 시리즈와 마이크로소프트 독점의 기원을 살펴보면, 애플이 현재 아이폰 소프트웨어 전략을 어떻게 구사하고있는지 흥미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다음 기사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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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Wars 3 – How Microsoft Got Its Office Monopoly

위민복님이 번역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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